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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노트/서양철학

칸트 - 수학적 이율배반, 심성론적 이율배반

by 엔티쟈 2022. 5. 24.

수학적 이율배반

 

정립: 세계는 시간상의 시작, 공간상의 한계를 가진다. (1) 세계가 시간상으로 무한하다면, 과거로의 시간 계열이 무한히 이어질 것이다. (과거로의 무한소급) 그러나 과거의 계열이 완료되지 않으면 그 결과로서 현재의 세계 또한 없게 된다. (2) 세계가 공간상으로 무한하다면 세계를 총체로서 인식하기 위한 종합도 완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를 총체로서 인식하는데, 이는 종합이 완료됨을 의미한다. à 시간상의 시작, 공간상의 한계가 있어야 세계가 없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정립: 세계는 시공간상 무한하다. (1) 세계가 시간상 유한하다면, 세계가 없다가 생겨날 빈 시간이 있다는 말이 된다. 빈 시간에서는 순간과 순간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어느 순간도 다른 순간들과 달리 세계의 시작을 가능케 할 조건을 갖출 수 없다. (2) 세계가 공간상 유한하다면, 그 유한성을 성립시키기 위한 빈 공간이 요구되는데, 이 또한 우리의 직관대상이 아니다. 빈 공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면, 그것은 없다는 말이다. à 세계의 경계선 너머의 추상적인 빈 시간과 빈 공간은 그 자체로 경험될 수 없고, 그 안의 경계선도 경험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경계선을 통해 세계를 유한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학적 이율배반의 한계: 세계와 자아의 관계에 대한 고찰의 필요성

반정립에서 빈 시간과 빈 공간은 그 안에 존재하는 세계와 세계를 의식하는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절대시간 절대공간이다. 만일 시공간이 객관적 세계를 담고 있는 객관적 좌표라면, 세계사물 너머 그 터전에 빈 시간이나 빈 공간이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 공간은 인간의 직관형식 안에 주어지는 시공간적 사물들과 더불어 있는 것이지, 경험가능한 세계 너머에 경험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직관형식에 따라 주어지는 세계는 현상이고,  현상의 터전은 빈 시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의 형식에 따라 현상을 직관하는 인간의 의식이다. 현상으로서의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과 공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비어있음일 것이고, 이때의 인식은 내용으로 채워지지 않은, 즉 시공간적 사물로도 시공간의 형식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빈 의식일 것이다. 이처럼 세계의 유한/무한성의 문제는 인간 의식과의 관계의 문제가 된다. à 인간 의식을 떠나 절대시간 절대공간의 수학적 좌표 위에서 세계의 경계를 논하는 수학적 이율배반은 그 문제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결국 정립과 반정립 모두 거짓으로 판명된다.

 

 

 

심성론적 이율배반: 자연필연성과 자유의 관계

 

심성론적 이율배반은 세계 전체 인간 정신과의 연관 하에서 논한다. 물리적 현상세계의 인과필연성 인간 정신의 자유가 서로 상충하는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정립: 자연법칙의 인과성은 세계 현상이 모두 그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인과성이 아니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유의 인과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자유로운 것이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면, 원인은 계속적으로 그 원인으로 소급하여 제약의 전체 계열이 완료되지 못하고 무한소급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전체 제약이 완료된 것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떠한 제약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것이 주어져 있다는 것이 현상적 사실이다. 따라서 어떤 무엇인가는 다른 것에 의해 제약되지 않으면서 전체 계열을 단적으로 시작할 수 있어야 하고, 이 능력인 자유는 존재한다.

 

반정립: 자유는 없다. 세계의 모든 것은 오직 자연필연성에 따라 발생한다. 어떤 것이 인과론적 연관 없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인과성의 개념과도 어긋나며, 아무 규칙도 없이 발생하는 것으로서 경험의 통일성 안에 연결되지도 않는다. 결국 의식의 통일성에 따라 경험되지도 않고 정리되지도 않아서, 그것은 현상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일로 간주되지도 않는다.

 

(해결) 자연필연성과 자유가 성립하는 영역을 구분한다면 정립과 반정립은 각각의 영역에 대해 타당한 주장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자유가 성립하는 영역은 자연필연성의 현상적 계열 자체를 가능케 하는 현상 근거의 영역,  형이상/물자체의 영역이고, 자연필연성이 성립하는 영역은 그 필연성에 따라 구성되는 자연세계의 영역,  형이하/현상의 영역인 것이다. 궁극근거로서 자유에 기반하여 성립된 현상세계는 철저하게 자연필연성의 규칙에 따라서 규정된다. à 유한한 현상 너머 물자체로서 남겨지는 것은 빈 시간공간이 아닌, 현상세계의 인식과 존재의 가능근거로 작용하는 인간의 의식/마음이라는 것이다.

 

수학적 이율배반에서 반정립의 논리는 정립을 전체적으로 부정한다. 그러나 심성론적 이율배반에서는 반정립의 논리가 제한적으로 수용된다. ,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은 현상세계를 유한한 것으로 경계짓는 현상 너머의 절대로 간주할 수 없지만, 자유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상을 지각하는 초월적 자아의 자유이다. 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우리 인식 능력에 의해 규정된 (초월적 의미의)현상일 뿐이다. 따라서 그렇게 제약된 현상세계에 경계를 긋는 현상 너머의 절대적 무제약자가 요구되는데, 그것은 현상 바깥의 객관적인 절대 시공간이 아니라, 현상을 지각하는 초월적 자아이다.

 

 

초월적 주체의 자유

 

심성론적 이율배반에서 자유 인과계열을 단적으로 시작하는 능력인데, 이는 시간상의 시작이 아니라 인과상의 시작,  존재론적 가능근거를 의미한다. 자유로 인한 계열의 시작이 우주의 발생 과정에서 최초 시점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작용하는 존재론적 근거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세계의 흐름 한 가운데에서도 자유롭게 계열을 시작할 수 있다.

 

현상의 자연필연성과 현상 너머의 자유의 인과성은 초월적 관념론의 두 축을 이룬다. 하나는 시간 공간의 초월적 관념성인데, 이로부터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현상일 뿐이라는 경험세계의 현상성이 귀결된다. 다른 하나는 자유의 초월적 실재성인데, 이로부터 현상세계의 관념성을 넘어서는 현상초월적 자아의 자유가 확립된다. à 현상세계의 직관형식인 시간과 공간은 초월적 관념성만 가지고, 현상세계의 가능 근거인 자유는 초월적 실재성을 갖는다.

 

초월적 관념론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인간 자신의 사고와 직관형식에 의해 규정된 현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런 현상세계를 구성한 인간 자신은 그 세계 너머의 존재가 된다. , 인간은 현상세계를 구성하는 초월적 주체인 것이다. 이는 경험적 자아, ‘현상으로서의 자아와 구분되는 무제약자로서의 자아이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는 의식이 바로 초월적 자기의식이다. 단지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확인할 수 있는 초월적 자기의식은, 경험적 규정성을 넘어선 자기의식이라는 의미에서 자유의 의식이며 순수 자발성의 의식이다. 이러한 자아의 순수 자발성의 의식이 곧 초월적 주체의 자기 활동성의 의식이다.

 

à 자유의 능력은 현상세계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이 현상너머의 무한을 바라보며 현상세계의 계열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초월적 결단의 능력이다. 이것이 곧 초월적 자유이며, 현상세계는 바로 이 초월적 자유에 기반하여 전개된 인과필연성의 세계이다.

- 한자경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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