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미지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는 운동을 매개해서 시간을 포착하고 측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달려갈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점점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알아차림으로써, 즉 그 운동의 이전과 이후를 포착함으로써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가 시간-이미지를 찍는다는 것은 ‘지금’이 아닌 ‘이전’과 ‘이후’, 즉 이미지와 붙어있는 과거와 이미지와 붙어있는 미래를 찍는 것이다. 비스콘티의 경우 그 방식은 카메라의 트래블링이다. <레오파드>에서 카메라는 성 주변의 조각상들을 보여주면서, 그 성에 누적되어 있는 과거를 느끼게끔 한다. 오손 웰즈는 심도화면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시간화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을 ‘운동의 수’라고 정의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수’는 연필 한 ‘자루’, 종이 한 ‘장’에서처럼 물건을 셀 때 나타나는 종류의 수이다. 따라서 시간은 덜 빠른 운동과 더 빠른 운동을 측정할 때 드러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간의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먼저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운동이고, 시간은 간접적으로 운동을 통해 표시된다.
칸트
들뢰즈에 따르면 시간과 운동의 관계는 칸트에 와서 큰 전환점을 맞았다. 칸트는 “운동의 개념이 오직 시간표상을 통해서만 그리고 시간표상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시간이 운동에 종속되어 있었다면, 칸트에 이르러서는 시간이 운동에서 풀려나고, 더 근본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칸트에 따르면 감성의 두 형식은 공간과 시간인데, 이는 칸트가 시간을 독립적인 형식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운동과 시간 사이의 역전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이다. 고전영화 또는 운동-이미지 체제에서의 영화는 쁠랑들을 붙여 운동을 만듦으로써 시간을 간접적으로 재현했다. 그런데 오즈를 기점으로 하는 현대영화 또는 시간-이미지 체제에서는 오히려 운동하지 않는 이미지일수록 시간 자체를 표현한다. 예를 들어 <만춘>에서 꽃병의 이미지는 움직이지 않는 견고한 시간의 형식을 보여주고, 이때 “시간의 직접적인 현시”가 일어난다.
- 이찬웅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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