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자와 지각대상
지각에서는 지각자/지각대상이 주관/객관으로 이원화되며, 그에 따라 본질/비본질의 구분이 성립한다. 본질로 여겨지는 것은 사물 자체이며, 그 대상을 지각하는 의식운동인 지각의 활동 자체는 비본질로 간주된다. 지각에서는 사물을 단적으로 직접 안다고 여기지 않고, 보편적 속성을 통해 알게 된다고 여긴다.
사물의 두 계기
지각은 사물을 그 자체로 안다고 여기는 의식이 아니라, 그 속성을 통해서 안다고 여기는 의식이다. 즉, 지각의 대상은 “여러 속성들을 가지는 사물”인데, 이때 사물은 두 계기를 지니게 된다.
- 무관심적 역시 – 속성들의 결합: 사물의 속성들 간에는 서로 간섭하지 않은 채 동일한‘여기’에 모여 있는 상호 무관심적 관계가 성립한다. 나아가 속성은 보편자적 성격을 갖는다. 사물은 그런 상호무관심적인 보편적 속성들이 동일한 시공간인 여기와 지금을 차지하고 함께 모여 있는 장 내지 매개체일 뿐이다. 그리고 사물의 사물성은 다양한 속성들의 단순한 함께함을 뜻한다. >>> 이러한 보편적 속성들의 장으로서의 사물이 ‘무관심적 역시’이다.
- 배타적 일자 – 사물 자체: 사물의 속성들은 상호무관심적으로 통합되기도 하지만, 한편 상호대립 안에서 대립의 부정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물은 대립되는 것을 부정하는 배타성을 통해 하나의 ‘배타적 일자’로 존재한다. - “상호 무관심적이 아니라 상호 배타적이며 상대를 부정하는 것인 한, 속성의 구분은 단순한 매개체 밖에 있게 된다.” à지각은 지각자와 지각대상을 분리하고 다시 지각대상에 있어 속성들의 결합(상호무관심적 역시)과 사물 자체(배타적 일자)를 구분하면서 그 안에서 사물을 아는 의식이다.
지각의 실상: 순환운동
지각은 일자와 역시를 동시에 인식하는 의식활동이다. 지각의 의식은 순환적이고 자기복귀적인 활동성이다.
1. 일자에서 역시로: 지각하는 의식에 대해 우선 대상이 순수한 일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므로 일자에서 출발하지만, 이 의식은 다시 곧 일자적 대상의 보편적 속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2. 역시에서 일자로: 그렇게 사물의 속성을 통해 대상을 지각하지만, 그러면서도 지각의 의식은 사물 자체를 서로 간의 공통성이나 연속성이 아닌, 바로 그 사물 자체인 배타적 일자로 지각한다.
3. 다시 일자에서 역시로: 그렇다고 배타적 일자에만 고착되어 있을 수는 없다. 지각의 의식은 다시 여러 속성들이 역시의 관계로 묶여 있는 매체에로 향하게 된다.
지각에서의 반성: 현상과 물자체의 구분
지각은 자기복귀적 운동 속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러한 운동성을 자신의 본질로 자각하지 못한다. 오히려 대상적으로 포착된 측면과 자기복귀된 측면을 분리하여 하나를 객관적 사물의 본질로, 하나를 비본질, 지각자의 착각/기만으로 여긴다. 그렇게 지각의 의식에서 현상/물자체의 이원적인 구분이 생겨난다.
지각을 보는 두 가지 입장
- 일이 실재, 다는 기만: 사물 자체는 속성에 대한 배타적 일자이며, 다양한 속성은 주관적 기만 – 우리에게만 그런 것으로 보일 뿐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성질들은 사물 자체와 무관하다. >>> 그러나 성질들을 모두 기만으로 배제한다면, 일자로서의 개체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사물의 배타성은 규정성에서 오는 것이며, 사물의 규정성은 사물의 성질들이 서로 구별되는 데에서 비롯된다. 즉, 우리는 속성을 통해 인식하게 되지 않는가? 그래서…
- 다가 실재, 일은 의식의 산물: 사물 자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속성들의 보편적 매체인 무관심적 역시이며, 그런 속성들의 통합체로서 간주되는 배제적 일자는 주관적 허구이다.
- 물자체와 현상, 객관과 주관의 구분의 지양 : 두 관점이 모두 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지각의식의 운동성, 일과 다의 연관성을 제대로 사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각하는 의식과 지각 대상을 대립으로 놓아, 물자체와 현상이라는 이분법을 낳고 있는 것이다. >>> 이 이원성은 자기복귀성과 운동성을 통해 극복된다. 지각은 일자에서 역시로, 역시에서 일자로 이행해가는 자기복귀적 운동으로, 객관 사물 자체와 주관적 기만으로 여겨지는 양 측면 모두를 포괄한다.
| 정리 |
역시와 일자 간의 상호이행작용이 바로 지각하는 의식의 운동이며, 지각의 대상 또한 자기복귀적 운동성으로서 존재한다. 사물은 자신 안에 자기부정성을 품고 있으며, 스스로를 지양하면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변증법의 논리(“모든 규정은 부정이다”)는 이러한 사물의 자기부정성을 따라 규정에서 부정으로, 다시 부정의 지양으로 나아간다. 대상이든 의식이든 모두 자기부정성을 자체 내에 지닌 운동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지각하는 의식에게는 그 운동 자체가 지각대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지각은 대상을 보편적 속성을 통해 인식하기는 하지만, 지각 단계에서의 보편성은 단지 감각으로부터 추출된 감각적 보편성 – 개별성/보편성의 분리 속에 놓여 있는제약된 보편성이다. 개별성과 보편성을 포괄하는 “무제약적 절대적 보편성”을 대상으로 삼는 의식은 개별/보편,의식/대상, 일자/역시를 이원화하는 지각의식이 아니라, 둘을 통일적으로 의식하는 오성이다.
- 한자경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철학 노트 > 서양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칸트, 원초적 계약 (2) | 2023.02.14 |
---|---|
칸트, 입헌공화국과 국제 연맹 (0) | 2023.02.13 |
칸트, 인간과 역사 (0) | 2023.02.12 |
헤겔, 오성 (0) | 2023.02.10 |
헤겔, 욕구 (0) | 2023.02.09 |
헤겔, 주인과 노예 (0) | 2023.02.09 |
헤겔, 금욕주의 (0) | 2023.02.08 |
헤겔, 회의주의 (0) | 2023.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