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자유로의 이행
칸트는 인간이 자연적 경향성이나 인과필연성에 따라 행하는 것과 이성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행하는 것을 구분한다. 전자는 물리생리적 법칙성에 따라 발생하는 필연적 과정, 후자는 초월적 자유의 자아가 스스로 선택하여 수행하는 자율적 행위이다. 자연/자유, 필연성/자유, 신체/정신, 경향성/이성 – 인간 본성상의 이원적 갈등은 곧 인간의 자기부정성과 자기 극복의 필요성을 말해주며 보다 나은 상태로 나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이 된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평온한 자연상태로부터 벗어나 견디기 힘든 세간적 삶으로 나아간다.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을 칸트는 그러한 과정으로 읽는다. 아무런 내적 갈등 없이 낙원에 머물러 있는 생활은 동물적 안락함과 빈둥거림일 뿐, 영예로운 것도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 안에 들어있는 이성의 맹아가 인간을 그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고 밖으로 나오게 하였는데, 그것은 인간 자신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인간이 비로소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낙원을 벗어남은 곧 자연상태를 벗어남이며, 인간성과 자유를 획득함을 의미한다. 칸트는 이를 역사에서 진보의 첫 출발이라 말한다. (반면, 루소는 자연상태를 평화로운 조화상태로 간주함)
자유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자연적 본능(식욕, 성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데,그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곧 그 본능을 없앤다는 것은 아니다. 자유란 인간의 의지가 그런 본능에 의해 수동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인간 스스로 자신의 본능을 따를 것인지 아닌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할 뿐이다.
이성이 이룩한 첫번째 진보는 (1) 영양섭취에 있어서의 자유이다. 이는 인간이 어떤 영양물을 취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는 한 순간의 상황에 의해 심성상태가 결정되지 않고 주어진 세계의 한계를 넘어 더 넓은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상상력의 활동 결과이다. à이성과 의지의 자유에 기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상상력이다. 영양섭취에 있어서의 자유와 자각이 인간의 삶에서 가지는 의미는 곧 인간이 자신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자각하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성이 이룩한 두번째 진보는 (2) 성적 본능에 있어서의 자유이다. 이 또한 상상력의 활동에 힘입은 것이다. 인간은 동물처럼 주기적인 성적 흥분에 의해 행동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 흥분 자체를 상상력에 의해 지속시키기도 하고 강화시키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내적인 성적 흥분뿐만 아니라 성적 흥분을 야기하는 대상으로부터도 스스로 거리를 취함으로써 그 자신이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이성은 상상력에 기반하여 자신의 본능의 한계를 넘어선다. 현상세계의 한계를 넘어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결국 (3) 의식이 미래로 확장됨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이성이 이룩한 세번째 진보이다.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 미래세계를 그려보며, 그 안에서 스스로 자기 의지를 결정하는 자유를 의식한다. 그러나 미래세계는 현재적 세계에 의해 규정된 것이 아니므로, 자유의 의식 안에는 걱정, 불안,죽음에의 두려움이 스며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불안과 공포는 이성이 자신의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워짐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이며, 그렇게 함으로써만 획득될 수 있는 자유를 위한 대가이다.
인간이 자신을 대상적 현상세계인 자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자각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자연세계의 일원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존재로 자각한다는 것, (4) 자신을 자연의 본래적 목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이성의 네번째 진보이다. 인간 서로 간의 차이성이 자연적인 현상세계에 속한 것이기에,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자연의 목적으로 자각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뿐 아니라 모든 인간 존재가 그러하다는 지각을 함축한다. 따라서 이는 곧 인간의 평등성의 자각이 된다. 이 자각으로부터 인간은 서로를 단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는 평등사회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자유의 실현과 이성의 계발: 시민사회 건설
인간들이 자유롭게 형성한 사회는 몇 단계의 변화를 겪는데, 그 최초의 단계가 (1) 수렵과 목축생활이다. 이때는 먹이가 풍부하고 광활한 대지가 있었기 때문에 다툴 필요가 없는 안락과 평화의 시기가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대지와 먹을 것의 제한성으로 인해 더이상 수렵과 목축으로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 상태가 되면,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곡식을 가꾸는 등 힘든 노동을 해야 하는 (2) 경작생활이 시작된다. 이때는 일체를 자신의 노동의 결과로 얻게 되므로 노동의 결과에 대해 자기 소유를 주장하게 되는데, 소유의 주장은 경작물에 대해서뿐 아니라 경작 대지에 대해서까지도 행해진다. 이처럼 배타적 소유의식이 생겨나고 그걸 지키기 위한 힘을 기르다 보면 결국 불화가 등장하며, 따라서 경작시기는 “노동과 불화의 시기”가 된다. 그런데 경작시기에도 아직 목축하는 자들이 존재하며 목축자는 농부의 농작물을 거리낌 없이 취하고자 하므로, 경작자들은 목축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경작자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자신을 방어하는 마을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로써 (3) 마을생활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며 생필품을 교환하고, 기술과 오락 등이 발생하여 문화가 형성된다. 이 단계에서 법에 따르는 (4)시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시민사회는 법과 행정력에 의거하여 유지된다. 이때부터 인간의 소유가 법적으로 지켜지게 되며, 소유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불평등”이 시작된다. 그러나 불평등, 긴장, 투쟁, 한마디로 인간의 반사회성은 오히려 사회 구성원들을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게 하여 자신의 미래를 현재 상태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게 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것이다. 그런 긴장과 갈등으로부터 모든 기술, 특히 “사회성과 시민생활의 안전에 관한 기술”이 발전하게 된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긴장과 갈등이 있어야만 국가의 발전이 있다. 따라서 전쟁은 “자유가 침해받고 개인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보살핌은 가혹하고 혹독한 수탈로 바뀌게”되어 그 자체로는 악이지만, “인류문화를 계속 진보하게 하기 위한 불가결한 수단”이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있어야만,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해 보다 나은 상태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라가 부강해야 하는데, 한 나라의 부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결국 자유는 부정될 수 없다.
인류의 진화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자유로서의 주체적 자각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지만, 그 자유의 실현은 현상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언제나 갈등과 투쟁이 있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그러한 인간의 반사회성에 기반하여 앞으로 전진한다. 자연이 이룩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자연적 소질을 모두 계발하여 자연의 현상세계가 자유에 합당한 상태로 되는 것, 달리 말해 자유의 기술에 따라 다스려지는 사회가 곧 자연이 되는 것, 그리하여 결국 자연과 자유가 합치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의 진보는 인간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류의 차원에서만 논할 수 있다. 여기서 인류의 발전이란 인간이 서로 견제하며 시민사회를 형성해나간다는 경험적 차원에서의 발전을 의미할 뿐, 개인의 도덕성의 발전이나 개인적인 삶의 발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인류의 발전이 의미하는 것은 도덕성의 증대라기보다 오히려 현상세계의 질서로서의 합법성의 증가일 뿐이다. 합법적 질서가 증대된 사회 속에서 인간의 자신의 도덕성을 얼마만큼 자각하고 실현시켜나가는가 하는 것은 사회 전체나 인류 전체의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의지와 자유에 맡겨진 일이다.
인류의 발전 방식에 대해 칸트는 혁명보다는 개혁을 통한 점진적 진보를 추구하며,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개혁을 기대한다. 위로부터의 교육과 계몽에 기대를 거는 것은 그가 계몽주의시대의 사상가로서 인간 본성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한자경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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