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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노트/서양철학

헤겔, 불행한 의식

by 엔티쟈 2023. 2. 6.

금욕주의에서는 주인의 자유의식이 단지 추상적 자유로서 사고될 뿐인데 반해회의주의에서는 사물을 변형시키는 노예의 노동이 대상의 부정을 통해 자기 자유를 실현해 가는 의식의 활동성으로 전개된다그러나 그러한 회의주의적 활동에는 자기분열적이고 자기모순적인 계기가 남아 있는데그 모순적 계기를 자신의 계기로 자각한 의식이 바로 자기모순을 자각한 의식그래서 불행한 의식이다

본질과 비본질의 모순은 곧 불변자와 개별자의 모순이기도 하다불행한 의식은 이러한 자체 내의 모순을 화해시키고 조화시켜 나감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극복하게 되는데이 과정을 거쳐 자기의식은 비로소 정신이 된다자신의 내면에서 자체 내의 분열과 모순자신의 운명적 불행을 극복한 정신이 바로 나 즉 우리우리 즉 나로 승화된 상호인정의 정신이다자신 안의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이 곧 불행한 의식에서 나 즉 우리의 정신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인 것이다헤겔은 이 과정을 불변자가 이해되는 3단계로3 구분하여 설명한다.

“첫번째 단계에서 불변자는 의식에 낯선 자로서 개체성을 비판하는 존재이다두번째 단계에서 그 타자가 의식이 그렇듯 개체성의 형태가 되면그것은 세 번째 단계에서 정신이 되어 자기 자신을 그 안에서 기쁨으로 발견하며그의 개체성이 보편자와 화해되었음을 의식하게 된다.”

이와 같이 불행한 의식은 내가 곧 우리가 되고개체가 곧 보편이 되는 정신으로 나아가기까지 3단계를 거치게 된다.

 

1단계보편자와 특수자의 대립

이 단계는 불행한 의식의 절정으로여기에서는 본질/비본질불변적/가변적인 것이 절대적 대립으로 나타난다물론 이 둘 다 하나의 자기의식의 두 계기라는 점에서 직접적 통일성 아래 있기는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계에서 이 둘은 일단 절대적 대립으로 등장하여 고통스러운 의식의 분열을 낳는다단일하고 불변적인 것은 본질즉 생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본질로 나타나고다양하고 가변적이며 우연적인 것을 비본질즉 생의 무상함이나 무가치함에 굴복한 비본질로 나타난다

의식은 양자를 포괄하며 그 둘 간의 관계로 존재하는데그 관계 자체는 본질과 비본질을 오가는 운동일 뿐이다즉 반대에 부딪쳐 정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서 항상 다시금 반대를 생성하는 모순적인 운동으로 남아있을 뿐이다이렇게 해서 의식의 본질은 내 안에서 포착되지 않는다나의 의식의 본질은 나의 비본질성 때문에 나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정립되며, 따라서, 나는 그 본질을 나의 본질로 획득하지 못하고스스로를 본질을 상실한 비본질 또는 본질과 비본질 사이의 분열적 존재로만 자각하는 불행한 의식이 된다생의 비본질성과 모순성에 빠져 있는 이 불행한 의식은 따라서 고통의 의식이다.

 

2단계보편자와 특수자의 통일

그러나 절대적 본질이 무상한 비본질인 나와 단절되어 있다는 고통의 의식 한가운데에 하나의 새로운 의식이 등장한다즉 이 둘의 관계가 절대적 단절이 아니며 불변자가 개별자에 의해 접촉되고 개별자 안에 현재화되어 있다는 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이로써 본질의 의식과 비본질의 의식의 하나됨, ‘이중적 의식의 하나됨’이 앞 단계의 생의 모순적 운동성의 진리로서 자각된다.

그러므로 이제 불변자는 더이상 생과 대립된 외적 초월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생과 결합되어 있는 하나의 형태로서 제시된다이처럼 불변자가 형태화된 존재즉 신이 성육화된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나 자신의 존재와 본질적으로 연관지어지지 않는 한그러한 불변자의 형태화는 오히려 더욱더 피안적 요소가 되어 나의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될 뿐이다불변자 자체가 형태화를 통해 개별자로 나타났다고 해도그러한 형태와가 나와 상관없는 우연적이고 역사적인 일회적 사건에 그치고 마는 것이라면그 개별 존재인 그리스도와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개별자 간의 구별과 대립이 아직 극복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절대적 본질과 하나가 되고 싶은 바람은 끝내 충족될 수 없는 소망으로만 남겨질 뿐이다그리스도의 출현이 단지 일회적인 역사적 사실로서만 파악된다면그 사건은 절대적 우연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절대자의 형태화가 단순한 역사적 사실로만 그친다면그 육화된 개별자는 그가 지상적 존재로 출현하기 위해 취해야만 했던 물질성과 현실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시간성에 따라 사라져가고 공간상으로 멀어 떨어져 있는 존재일 뿐이다.

시공간상의 제한성을 극복하지 못한 단순한 역사성은 필연적으로 소멸성 아래 있게 된다시간 안에서 출현한 신은 시간을 따라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결국 단순한 역사성이라는 외적 관계로서는 형태화된 불변자와 내가 본질적으로 하나로 고양될 수가 없다.

 

3단계보편의 내재화

개별적 의식이 그런 역사성을 극복하고 외적 관계를 넘어서서 불변자를 개별 자아 내에서 자기 자신의 본질로 파악하게 되면이때 비로소 개별자와 보편자와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본질로부터 유리됨으로써 느껴지던 생의 고통은 생의 환희로 바뀌게 되고불행한 의식은 불변자 내기 보편자와 화해한 정신으로 고양된다이처럼 형태화된 개별자와 하나가 되는 내적 관계지움의 운동을 헤겔은 다시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3-1단계느낌상의 심정적 내면화의 단계

이 단계에서는 의식의 개별성과 순수사유(본질)와의 화해가 아직 그런 것으로서 사고되지 못하고 단지 느낌으로만 느껴질 뿐이다. 동일성이 미처 자각되지 않아 아직은 불행한 의식으로 남아 있다둘이 중간에서 접촉하고 있지만그 접촉이 스스로에게 자각되거나 사유되지 않은 단계이다즉 개별자로 형태화된 불변자가 의식 자체라는 것의식의 개별성 자체라는 것이 아직 자각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것은 불행한 의식이 그 둘의 통일적 관계를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 개념적으로 파악하려 하지 않고단지 순수한 내적 느낌 또는 사모의 감정으로써만 다가가려 하기 때문이다헤겔은 이를 일종의 음악적 사유라고 부른다.

불변자와 개체의 통일성은 개념적으로 사유되지 않은 채 단순한 심정의 내적 움직임으로만 느껴질 뿐이다개체 의식은 분열의 고통 속에 머무르고 합일에 대한 무한한 동경만을 간직할 뿐이며불변자는 단지 기도의 대상이고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본질은 추구되기는 하지만아직 다가설 수 없는 피안으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불변자와 본질은 나 자신과 분리된 직접적 감성적 확신의 대상으로서의 개별자로 여겨지고 사라져 버리는 피안으로 간주된다인간이 그 피안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희망은 사라진 개별자의 무덤을 오히려 현실성으로 느끼게 하며결국 사라져버린 육화된 개별자의 무던과 자기 자신의 무덤만을 현실적 존재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참된 의식은 그러한 피안적 무덤이 실은 아무런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따라서 사라져 버린 개별성은 역사적이고 시간적으로 제한된 것으로서 참된 개별성이 아니라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그리하여 불변자의 표출인 개체성을 우연적이 아닌 참된 보편적 개체성으로서 추구하게 된다.

 

3-2단계감사와 자기포기의 단계

첫 단계의 좌절을 통해 심정은 자신의 본질을 더이상 자신의 외부에서 추구하지 않고자기 자신에게로 복귀하여 자신이 자신과 분리된 본질로 느꼈던 대상적 본질의 느낌을 자기 자신의 느낌으로 확인하고자 한다그렇게 해서 불변자를 자기 내면 가까이서 느끼게 된다여기에서 욕구와 노동이라는 불행한 의식의 활동이 다시 한번 더 전개된다욕구와 노동의 의식에서 불변자는 피안의 존재로 추구되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현실성 자체가 한편으로는 그 자체 무상하고 무의미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자의 자기 전재로서 형태화된 성스러운 세계로 나타난다따라서 이제 세계 자체가 불변자의 형태로 받아들여진다.

이제 세계는 내게 불변자의 형태인 성스러운 세계로 드러난다향락이나 노동에서는 자립적 의식에 대해 현실계가 무가치한 것으로 나타나므로 의식이 스스로 그런 현실성을 지양할 수 있었지만현실성이 불변자 자신의 형태로 나타나는 지금의 단계에서는 의식이 스스로 그 현실성을 지양할 수가 없다다시 말해 의식이 현실성의 무화와 향락에 이른다고 해도그것은 본질적으로 의식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불변자가 의식으로 하여금 그것을 향유할 수 있도록 위임하기에 가능한 것이다즉 수동적 현실성의 극단을 지양할 수 있는 활동성의 극단은 나의 대자적 의식 너머에 있는 피안의 활동적 힘으로 등장한다

여기서 불변자에 대한 개별 의식의 관계는 주인에 대한 노예의 관계와 같다실제로 불변자와 개별적 자기의식의 관계는 상호적인 자기포기이다즉 의식에 대해 불변자는 스스로의 형태를 거두어서 의식에게 그 활동성을 부여하며개별적 의식은 그 양도된 힘을 사용하면서 그 본질적 힘에 감사하고자기 행위의 본질을 피안적 절대자에게 돌린다.

이와 같이 인간이 자신의 무상성과 비자립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본질적 힘의 원천을 신 내지 불변자에게로 돌릴 때이러한 자기비하의 인간은 자신을 피동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다그렇지만 이러한 자기비하는 바로 자기고양이다왜냐하면 그런 방식으로 신을 정립하는 자가 바로 인간 자신이기 때문이다이처럼 의식은 끝까지 자신을 지켜나간다.

의식은 자기비하를 통해 자신을 낮추면서 동시에 본래적 힘으로서의 자기초월적 신을 정립하며결국은 그처럼 신을 정립하는 자가 곧 인간 자신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이것은 자신의 고유한 개별성을 무화시켜 좀 더 심원한 자기의식이 되고자 하는 성자적 고행의 의식이다그러나 이러한 고행과 금욕에는 아직도 갈등이 남아 있으며이 갈등이 곧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표현된다.

 

3-3단계완전한 자기비움을 통한 절대자와의 합일

자기비하를 거쳐 보편적 개별자인 불변자를 자기 행위의 본질적 주체로 정립하는 불행한 의식은 스스로 자기 자신이 현실적으로 작용하는 불변자의 의식임을 자각하게 된다즉 자기 행위의 가난함을 인정하는 속에서 불행한 의식은 자신의 불변자와 통일되어 있음을 의식한다왜냐하면 불행한 의식의 현실성의 무화 그리고 끝없는 자기비하는 오직 불변자의 사고에 의해서만즉 불변자와의 관계를 매개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매개란 성직자와 교회이다.

개별적 의식은 그 중간 매개자에게로 자신의 행위 및 향유의 근원을 돌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자기 의지의 본질결단의 자유자기 행위의 책임과 죄로부터 해방시켜 버린다자기 본질을 절대자와의 매개에로 넘겨 버림으로써 자신을 철저히 외화하고 사물화 내지 대상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신의 희생고유의지의 포기는 부정적 의미뿐 아니라 긍정적 의미도 지닌다즉 자기 의지를 자기 고유의 의지가 아닌 타자의 의지로 규정함으로써스스로 자신의 개별적 의지를 지양하고 보편적 의지에로 고양되어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체적 의식의 자기포기를 통해 자기라는 대자적 존재는 소외되고 지양되며보편적 자기보편적 의지가 회복된다불변자의 매개에 입각해서 보면 세계의 현실성은 더이상 부정되어야 할 의식 투쟁의 대상이 아니다보편화된 의지로서 이성은 그 스스로 모든 현실성이 된다이 이성의 단계에서 비로소 자기의식과 그 대상인 세계와의 부정적 관계가 해소되고이성은 자연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불행한 의식을 넘어서서 개체와 보편의식과 존재본질과 현실을 통합하여 자기 자신을 자각하기에 이른 의식이 곧 이성이다

 

 

- 한자경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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