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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노트/서양철학

​에이어, “자유와 필연”: 양립가능론

by 엔티쟈 2022. 5. 24.
  •  논문에서 에이어는 양립가능론을 지지한다. 에이어의 주장은 다음  가지로 요약된다.
  1. 자유의지는 결정론을 전제(presuppose)한다.
  2. 자유의지와 반대되는 개념은 인과성(causality) 아니라 강제(constraint)이다.

 

양립불가능론자의 논변:

  1. 다르게 행위할  있는 행위자의 힘은 인간을 도덕적 행위자로 만드는 데에 필요한 의미에서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말의 필요조건이다.
  2. 결정론이 참이면 (, 인간 행위가 인과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면), 실제 행위와 다르게 행위할  없었을 것이다.
  3. 따라서 결정론과 자유의지(도덕적 책임) 양립불가능하다.
  • 결정론이  = 인과법칙에 의해 지배 à 같은 .   * 항상적 연접 이론 (규칙성 이론) – . 
  • “A B 원인이다” = A 유형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B유형의 사건이 발생한다.

 

양립불가능론의  가지 입장

  1. 자유론자 (도덕론자)  자유의지를 옹호
  •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존슨 박사) = 우리의 의지가 자유롭다는 것을 안다. (참이라는 것을 함축) 그러므로 우리의 의지가 자유롭다.à 그럼 내가 자유롭게 행위하고 있다는 느낌 가지니까 나는 자유롭다.
  • à 반박: 자유론자들은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느낌 호소함으로써 결정론이 거짓이라는 믿음 (따라서 자유의지가 참임) 정당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렇게 느낀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경우, 행위자가  행위의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 입증 수도 있지 않은가? ,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원인이 없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다. 행위자가 그의 행위의 원인을 모른다는 것으로부터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따라나오지 않는다.
  • à 반박: 안다는 것은 지식’ – 믿는  이상으로, 그것이 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이런 식의 논증이라면, “자유의지를 갖지 않는다 à 자유의지가 거짓이다 라는 역의 논증도 가능하다.

 

  1. 결정론자  결정론을 옹호 (강한 결정론)
  • 결정론에 대한 믿음 역시 정당화되어야 한다. 어떻게 정당화되는가?à 반박: 결정론은 필연적, 선험적 참이 아니다!
  • 도대체  모든 사건이 어떤 원인을 가져야 한다고 상정하는가?  반대도 생각할  있다. 보편적 인과법칙은 결코 과학적 사유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과학자는 인과법칙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고, 대체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렇지만 경우에 따라 통계적 법칙들만으로 만족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는 현재 지적 수준으로는 결코 어떤 법칙 아래 포섭할  없는 사건들에 직면하기도 한다.”
  • 선험적으로? , “모든 사건은 원인을 가진다라는 결정론의 논제는 선험적이고 필연적으로 참인가? 만약 그렇다면 행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à 라이프니츠의 충분이유율 등의 생각.
  • 어떤 사건에 대한 법칙(원인) 찾을  없을 , 그것은 (1) 아직 과학적 탐구가 심도있게 전개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강한 결정론자), (2) 실제로 법칙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유론자)à 여기서 에이어가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 행위에 대한 결정론이 참이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행위가 자유로운 행위라면, 인간 행위에 대한 결정론은 참이어야 한다는 조건적 주장이다.
  • à 이런 식으로 계속  입장이 충돌한다.

 

자유의지는 결정론을 전제(presuppose)한다.

  • 에이어: 자유의지가 참이라면 결정론이 참이어야 한다.

이에 대한 에이어의 논증: 인간의 행위가 결정되지 않는다면, 도덕적 책임을   없다.

 

만약 누군가가 다른 방식이 아닌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여야 한다는 것이 단순히 우연 문제라면, 그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책임 있는 존재라고는 결코 말할  없다. 그리고 사실상 누군가의 행위가 전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 우리는  사람을 도덕 행위자로 파악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를 정신이상자로 간주한다.”

 

  •  논증에 대한 자유론자 (도덕가)들의 답변:
  1. 결정론이 거짓이라는 것이 우연히 일어났다는 의미를 함축하지는 않는다!  행위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유로운 선택 결과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을   있다.
  2. à 에이어의 재반론: ‘선택 어떻게 일어나는데? 나의 선택은 우연이거나 우연이 아니다. 우연이라면, 도덕적 행위자가 불가능해진다. 우연이 아니면, 다시 결정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à 딜레마 논증
  3.  선택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성품 의존한다.  성품에 따라 선택을 하고,  선택에 내가 책임이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롭다.
  4. à 에이어의 재반론: 어떤 의미에서  성품에 내가 책임을 진다고   있는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의 성품을 만든다. 어떻게 그런 종류의 인격을 만들었는가? 나의 의지의 강함으로. 어떻게 의지가 그렇게 강할  있었는가? 우연이거나 우연이 아니다. 우연이면 도덕적 책임을   없고, 우연이 아니면 결정론으로 돌아간다. à 어떤 포인트에서도 결정되었거나/결정되지 않았거나의 딜레마 발생.
  • 나의 행위들이 나의 성품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나의 행태가 일관성이 있고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하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내가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행위는, 무엇보다도 성품에 따라 수행한 행위이다. à 따라서 도덕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결정론과 양립불가능하기는 커녕, 오히려 결정론을 전제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도덕적 책임의 필요조건인 자유의지는 결정론을 전제한다.
  • 따라서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화해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à 양립가능론으로 나아감.

 

에이어의 입장: 양립가능론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화해)

  • 양립가능론자들은 자유의지의 문제가 자유’ (또는 다르게 행동할  있었다’) 의미에 대한 혼란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에이어 역시 자유에 대한 일상적 의미의 용례를 명확히 함을 통해 자유의지가 결정론과 양립가능하다는 것을 보인다.
  • 에이어의 주장: 자유는 인과성과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강제와 대비된다.홉스: “자유를 강제의 반대개념으로 보는  있어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며 따라서 자유와 필연성에 관한 지금까지의 논쟁은 언어상의 논쟁에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다.”
  • 어떤 행위를 강제에 의해 한다는 것은 그것을 하게 하는 원인이 있었음을 함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역이 성립하지 않음을,  나의 행위가 인과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으로부터 내가  행위를 하도록 강제되었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따라나오지 않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주장은  행위가 인과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으로부터 내가 자유롭지 않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따라나오지 않는다 주장과 같다.” à 강제는 인과를 함축하지만, 인과는 강제를 함축하지 않는다. 따라서  행동의 원인이 있다고 해서 내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따라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강제된다면 자유롭지 않다.

 

  •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내가 강제되었다고   있는가?
  1. 타인에 의해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강요되는 경우 (협박): 최면 등에 의해 선택의 능력이 박탈당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따르지 않았을 때의 결과가 죽음이라던가, 치명적일 경우.
  2. 타인에게 습관적으로 복종하는 경우, 또는 도벽 환자 (강박증, 노이로제 환자): 선택의 여지가 없고 (선택의 능력 박탈), 숙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 또는 숙고를 통해 어떤 결단을 했다 하더라도  결단이 행위에 인과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 어떤 양립가능론자들은 행위의 원인이 외적이지 않고 내적 ,  행위는 자유로운 행위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이어에 따르면 원인이 내적이어도 자유롭지 않을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도둑은 훔치는 것을 그만두기를 선택했다면, 훔치지 않을  있었다지만, 도벽환자는 그럴  없다. 도벽환자가 훔치지 않겠다고  의지는 행위로 연결되지 못한다.
  • 대안적 가능성의 새로운 조건적 의미: “달리   있었다 à 내가 달리 원했더라면, 달리 했을 
  • 자유 = 내가 선택한 것을 실제로   있는 능력

 

에이어의 양립가능론에 대한 반론들

  •  번째 반론: 강제의 경우들과 자유로운 행위라고 생각되는 경우의 본질적 차이가 있는가? , 결단과 선택 자체가 인과적으로 결정된다면 ( 선택을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원인 (환경이나 이력 ) 있다면,  행위를 자유로운 행위라고 말할  있는가?
  • à 에이어의 답변: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되는 경우란 나의 행위가 원인을 갖는 경우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어떤 특별한 원인을 갖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갖는다고 해서 결정된다는  아니야!)
  • 여전히 이러한 차이에 호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모든 원인들은 똑같이 필연적이 아닌가?정신분석가가  행위를 어린 시절에 시달렸던 어떤 장애와 결부시켜 설명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경우 어떤 다른 사건과 결부된 어린 시절의 경험은 현재의 나의 행위를 필연적이게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것은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에 따라 사람들이 어떤 특수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일반적 사실일 뿐이다. 그리고 나의 사례는 이러한 일반 법칙의 사례일 뿐이다.  행동이 어떤 자연법칙에 포섭되어 설명될  있다는 사실로부터 내가 강제에 의해 행동한다는 것이 따라나오지 않는다 à 원인이라는 것은 상관관계에 의해 예측가능하다는  전부이다.
  • à 에이어의 답변: 원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à 인과에 대한 흄적 입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과(또는 필연성) 강제를 함축하지 않음 주장하는 .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사건이 사실적으로 상호연관된다는 것만을 의미한다. “ 유형의 사건이 발생되는 순간, 다른 유형의 사건도 앞의 사건과 시간적 공간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 것만이 인과에 대한 사실이다.  종류의 사건들 사이의 상관관계(법칙 or항상적 연접) 존재할 뿐이지, 인과개념에 어떤 강제도 없다.

 

  • 에이어는 결정론 (원인, 필연성) 대한 잘못된 직관이 다음과 같은 개념들과 혼동하는 것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결정론에 의해 요구되는 것은  행위가 설명가능하다는 )

 

  • 에이어의 자유로운 행동,  다르게 행동할  있었다 조건:
  1. 내가 다르게 선택했더라면, 다르게 행동할  있었다.
  2. 누구도 나의 선택을 강제, 강요하지 않음
  3. à 자유에 대한 이와 같은 조건은 결정론과 양립가능하다.

 

  •  번째 반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결정론의 요청이 타당하다면, (1) 미래는 과거와 관련하여 설명될  있다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2) 이것은 우리가 과거에 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면 과거를 예측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3)  경우 미래에 일어날 일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할  있겠는가? (4)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내가 막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5) 결정론이 정당하다면, 나는 운명의 무력한 포로가 되어버린다.”(67) à 밑줄: 운명론 내용미래의 사건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의 함축 내용이 누군가가  사건을 계획했다는 뜻이라면, 그러한 명제는 거짓말이다. (결정론은 누군가가  사건을 계획했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만약 의미되는 바가 적절한 법칙과 과거에 관한 일련의 특정한 사실로부터 일련의 미래의 사실을 연역하는 일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뿐이라면 (법칙이 있고 그에 따라 예측이 가능하다는 말이라면), 내가 운명의 무기력한 포로가 되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행위가 미래에 전혀 변화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결코 함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행위는 결과일 뿐만 아니라 원인이기 때문이다.” à 결정론은 후자의 의미만 함축한다.
  • à 에이어의 답변: 결정론 vs. 운명론을 구분해야 한다. 결정론은 결코 운명론을 함축하지 않는다.

- 이선형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